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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2

페르마의 마지막정리 다음의 정리를 『페르마(Fermat)의 대정리』 혹은 『Fermat의 마지막정리』라고 한다. 페르마는 직업적인 수학자가 아니라, 툴르즈 지방 의회에 소속된 법률가이자 치안 판사였다. 그는 수학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지만, 수학에 강렬한 애착을 갖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생존 기간 중 수학에 대해 사실상 아무 것도 출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위대한 수학자들과 매우 많은 서신 왕래를 하였다. 이 유명한 마지막정리의 형식화에 이르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비잔틴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문헌을 갖고 서유럽으로 피신했다. 그 중에는 당시까지 보관되던 디오판토스의 산학(arithemetica)이 있었다. 이 책은 후에 1621년 중 그리스 문.. 2020. 7. 16.
도박에서 출발한 확률 연구 17세기 중반 상류층 귀족인 드 메레(de Méré ; 1607~1684)는 주사위 한 개를 네 번 던질 때 6의 눈이 적어도 한 번은 나온다는 데 돈을 걸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와 내기를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그는 이 내기로부터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그는 경험을 통해 진 경우보다 이긴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주사위 한 개를 네 번 던질 때 6의 눈이 적어도 한 번은 나올 확률이 , 즉 약 51.8%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충동적인 도박꾼이었던 드 메레는 또 다른 내깃거리를 찾아냈다. 주사위 두 개를 동시에 24번 던질 때, 나온 두 눈의 수의 합이 12가 되는 경우가 24번 중 적어도 한 번 있다는 데 돈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이 내기가 처음에.. 2014.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