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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좀해보자

개신교는 이단이라는 단어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by mathpark 2014. 11. 2.

<나를 비롯해 한국의 목사들은 대부분 돈 벌레 사기꾼들이다.>


한국 교회는 돈 때문에 건강성을 잃어버렸다. 그것은 곧 교회 성장주의랑 맞물려 사회정의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구제의 목적보다는 자기살 붙이기에 급급했다는 소리다. 일부 교회들은 이런 방법으로 자금을 동원하고 따라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 이것은 교회가 교회의 기능을 상실하고 기업체의 운영방식에 따라가고 또한 그렇게 교회가 변질됨으로써 하나의 독립된 왕국으로서의 기능으로 교회의 의미는 추락하게 된다.

자신들 맘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유리한대로 교리를 이용해 먹는 개신교는 이단이라는 단어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오늘날 한국의 교회는 그 자체가 '사업체'이다. 우선, 십일조라는 것은 한국에서만 걷어 가는 희한한 헌금이다. 큰 교회는 마치 대기업처럼 운영되며 신도들의 돈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긁어낼까 궁리하고 작은 교회도 나름대로 할 건 다 하고 있다.

목사라는 사람들이 예배시간마다 십일조 꼬박꼬박하라며 십일조를 내면 그 몇 배의 돈을 하나님이 다시 돌려준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정말 역겹다.

십일조를 내기만 하면 월급쟁이 봉급이 배로 늘어나기나 하는가? 그리고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도 사업 실패하거나 실직하는 사람들은 또 뭐란 말인가? 자신들의 빵을 벌기 위해 자신도 믿지 않는 거짓말을 일삼는 목사들의 도덕심이 어떤지 심히 걱정스럽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십일조는 하나님이 아니고 목사에게만 필요한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에게 돈이 필요하겠는가? 돈은 분명히 목사들이 필요한 거지...

구약 속의 율법에 십일조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율법을 그대로 지키려면 기독교인들은 돼지고기도 먹지 말아야 할 것이고, 남자아이는 생후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장애인과 성 불구자, 사생아들은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유대교와 다르다. 예수는 돈 생겼을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에게 '하나만 바치고 아홉을 가져라'라고 한 적은 없다. 물론, 마태복음 23장 23절, 누가복음 11장 42절에서 예수는 십일조에 대해서 언급하기는 했지만 문맥 상 십일조를 옹호하는 구절은 아니며, 예수의 가르침은 전 재산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라고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돈 많은 청년이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희망하자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리.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띄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가복음 10장 21~22절] (똑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19장 21~22절에도 있음)라고 말했다.

아마 이 땅의 신앙의 지도자이신 목사들은 성경 구절 중 이 대목을 가장 저주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밥줄이 달랑거릴 테니까... 한 마디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격으로 성경을 믿는다. 헌데 외국에 있는 이민 교회가 더 심각하다는 선배 목회자님의 한탄 소리가 내 맘을 찢어놓는다...

유독 한국 목사들은 다른 율법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돈 들어오는 십일조는 철통같이 강조를 한다.

십일조뿐인가? 한국의 개신교는 추수감사절을 기독교의 큰 절기로 강조하는데, 추수감사절은 단지 미국의 명절일 뿐, 2000년의 오랜 기독교 전통을 가진 유럽 개신교 국가에는 이 행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뭐, 한국의 개신교가 주로 미국에서 전도되었으니 영향을 받았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맥추감사절이라는 것은 정말로 황당한 것이다.

맥추감사절은 추수감사절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에서 등장한 속 보이는 절기이다. 도대체 보리를 주식으로 하는 민족도 아닌 우리들이 왜 맥추감사제를 지내야 하는가? 보릿고개의 추억을 되살려 보려고? 허허~ 신년감사헌금, 사순절, 부활절, 오순절, 맥추절, 심령부흥회,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등 별의 별 시즌이 다 등장한다.

게다가 건축 헌금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또한 한국의 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교회 건물이 번듯하게 있는 교회가 뻔뻔하게 건축 헌금을 걷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더 좋은 교회 건물을 짓기위해서란다.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수 많은 개척 교회가 난무한 오직 한국에서만, 또는 외국에서도 오직 한인만 우글거리는 한인 교회 내에서만 볼 수 있는 추악한 추태일 수밖에 없다. 멀쩡한 건물을 헐어버리고 대리석으로 도배를 하며 웅장하게 지어지는 모습을 볼 때는 씁쓸하다 못해 아주 밥맛이 다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 한국의 천박한 자본주의와 어쩌면 그렇게도 닮아있는가. 더구나 이제는 청산해야 할 수구적인 것들의 근원지가 바로 그러한 대형 교회의 주인들임을 볼 때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것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국민의식 개혁운동으로 집단 종교생활은 오직 식민지 및 노예 민족의 문화유산이기에 멀리하게 하는 정책으로 바뀐 지 오래돼서 이제는 교회를 다녀야 신앙 생활을 하는 거라는 헛된 고정관념의 사람이 줄어들어서, 더 이상의 교회 건물이 필요없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구인들은 비록 과거에 식민지 제도와 노예 제도가 실행돼서 그 식민지, 노예만을 위한 집단 종교생활이 성행했을 때도 교회 건물을 확장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 교회의 형편이 나아지면, 그 사정에 따라 교회 건물을 신축, 또는 확장하는 것이지, 강제로 헌금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한국 개신교는 들어온 수입 중에 교회 헌금 중 사회 봉사비는 고작 3.8%에 불과하고 선교비는 5.3%인 반면 목사 급여 및 관리비에 67%가 쓰인다고 한다. 교회야말로 구제 사업으로 십일조조차 하지 않는 셈이다. 대부분의 신도들의 헌금은 교회 건축과 목사 사례비로 지출될 뿐이다.

목사 사례비만을 말하면 얼마 되지는 않지만 이것저것 갖다 붙여서 목사 최종 급여가 교회 헌금의 거의 50% 이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때 그 교회 목사는 혹시나 평신도들이 눈치챌까봐 서류 상 얼마 안 되는 오직 목사 사례금만 얘기한다. 그래서 목사가 돈에 미치게 되면 돈에 미쳤기에 더욱 더 부흥회를 하려 하고 그만큼 더욱 더 점잖은 척하며 부드러운 미소로 연기력을 발휘하며 신도들의 친교를 신경쓰는 것이다.

물론, 단 5%도 안 되는 금액을 환원하면서도 온갖 생색 다 내며 사회에서 높은 위치 차지하려는 집단이 그들이다. 통계적으로 3.4%라고 하는데, 저는 그것도 안 믿어진다. 어디 어느 교회가 교회 재정 관계자 몇몇 빼 놓고 정상적으로 재정 운영을 하고 공개하는가?

물론, 연말에 한 번씩 재직자들 모아 놓고 재정 보고하는 쇼를 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사전에 조작된 것이고 목사와 장로들 간에 입을 맞추어 놓은 것인지는 누구라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 외에도 헌금의 종류는 끝도 없다.

여전도회 헌금, 해외선교 헌금, 감사 헌금 등등... 좀 심하게 오버하는 X교회에 안티 기독인들이 파견되어 헌금 봉투를 수거해온 결과 헌금 수는 총 14종으로 십일조 헌금, 구역 보고서, (각종)감사 헌금, 전도 헌금, 북한 선교 헌금, XX 성시화 헌금, 일 천 번제 건축 헌금, 일 천 번제 감사 헌금, 새 성전 건축 헌금, 새 성전 성구 구입 헌금, 기도원 헌금, 결연 헌금, 구제 헌금, 호스피스 헌금 등의 헌금 봉투가 수거되어 충격을 주었다. 정말 웃긴 건 똑같은 종류의 헌금을 이름만 살짝 바꿔서 늘려 놓았을 뿐이 아니라, 그 교회 주보에는 "천구좌 헌금운동 목표 : 5천구좌 / 1구좌 : 300만원"(전부 합하면 150억원!)이라고 적혀 있어 충격과 경악을 안겨 주었다.

자신들 유리한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원래 교리에서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을 개신교의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가?

본인이 한국의 개신교에서의 헌금 문제로 보았을 때, 한국 개신교는 전부 다 이단이다! 제발 있지도 않은 헌금 명목을 만들어서 신자들의 고혈을 빨아내, 교회 건물 치장하는데에 허비하지 말라.



- 김바울 목사 (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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